2012년 12월 28일 아침, 며칠전에 전화 통화를 한 지흠이가 전화를 했다.
평소보다 목소리 톤이 낮은 친구의 목소리에 예감이 이상했다.
갑자기 어머님께서 별세하셨단다.
친구는 회사근무로 태백에 있는데 자영이 엄마가 집에서 아침에 문안드릴려고 문을 여니
어머님께서 옆으로 누워 잠을 주무시는것 같이 운명을 하였단다.
가장이 없는 집안에서 자영이 엄마와 아들 근영이가 많이도 놀랐을거다.
태백에 눈이 많이 내려 자가용 운전을 생략하고 회사 사륜구동차로 직원이 함께 동승한다니 마음이 놓인다.
그래 나도 빨리 정리하고 제천으로 갈께.
다행히 금요일, 학교 일이 두곳이라 다녀와서 하면 될것 같아 세탁중이던 세탁기를 조기에 종료하고 제천으로 향했다.
제천으로 운전하는 중에 머리속에 중학교 2학년때부터 뵈었던 지흠이 어머님의 모습이 파노라마로 스친다.
중부고속도로, 내륙고속도로 감곡에서 나와 국도 앙성부터는 눈이 도로에 쌓여 운전에 신경이 쓰인다.
제천 집근처 제일장례식장에 도착을 하니 조금전에 도착한 친구와 가족들이 있다.
장례절차는 내일 9시에 입관을 하고 10시에 입관예배, 30일에 화장후 제천시에서 운영하는 장소에 안치를 한단다.
어머님부터 며느리까지 모두 독실한 크리스찬이라 장례절차는 여느 유교절차보다 간소하다.
친구한테 여흘전에 어머님이 치매증상이 오기 시작한다고 전화가 왔었다.
자영이 엄마 더 고생하기전에 다니시는 병원에 모셔가서 의사처방을 한번 받아보라고 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평상시에 고혈압과 신장이 좋지않아 거동도 거의 못하셨는데
치매까지 오면 며느리의 고통은 더 가중될텐데.....
장례식장에서 그동안 과정 얘기를 들어보니, 어머님은 당신이 더 병상이 깊어지기전에 운명을 예감하셨는지
적당히 병마와 싸우시다 별세하신것 같다.
자식에게 짐이 되면 안된다고 편안하게 시골 이담에서 계시다가 3년전에 제천으로 자식과 합치셨다.
3년동안 아들 며느리 보살핌속에 편안하게 계시다가 적당히 투병하시고 떠나신것 같다.
그동안 지흠이가 엄마 아내 중간에서 어려움이 있을거고 특히 자영이 엄마가 고생이 많았을것 같다.
어머님은 6.25 한국전쟁이 없었으면 세상을 아무 어려움 없이 사셨을텐데 한국전쟁이 운명을 갈라 놓았다.
친구 외조부가 평안북도 도지사를 하셨고, 평안도 박천 땅이 거의 외갓집 소유였으니까 짐작이 간다.
지금도 일부 땅문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복한 가정환경이였는데 한국전쟁 때문에 외조부께서 하인을 대동해서 막내딸(지흠이 어머님)만 남쪽으로 피난을 보냈단다.
금년 4월경에 태백을 갔다가 오는 길에 문안을 드렸던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뵐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이제 하늘나라로 간 마누라 그만 잊고 새가정 꾸리라는 말씀을 항상 제일먼저 하셨다"
30일 발인날, 전날 밤부터 눈이 소복히 내려 온 세상이 순백으로 변한 가운데 가족들의 슬픔을 뒤로 하고 하늘나라로 승화 하셨다.
나도 조문기간 내내 내 가족같이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도 부족했던것 같다.
다시한번 어머님의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하며 머나먼 하늘나라에서 영면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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